디지털화폐(CBDC)

한국형 CBDC가 나아갈 방향 – 기술, 정책, 사회적 균형을 중심으로

ideas-mini 2025. 7. 1. 05:13

전 세계가 중앙은행 디지털 화폐(CBDC)를 도입하기 위한 연구와 실험을 본격화하고 있는 가운데, 한국 역시 디지털 원화의 도입 가능성과 방향성을 놓고 본격적인 검토에 나섰다.
한국은행은 이미 수차례에 걸쳐 CBDC 기술 실험과 정책 리허설을 완료했으며, 2024년부터는 금융기관과의 협력 시범사업과 함께 디지털 화폐 인프라 구축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CBDC는 단순한 기술 도입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통화 시스템, 금융 산업 구조, 국민의 경제활동 방식 전반을 바꾸는 근본적인 정책 선택이자 국가가 디지털 사회에서 어떤 방식으로 화폐와 권력을 설계할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결정이다.

이 글에서는 한국형 CBDC의 추진 현황을 점검하고, 기술적 완성도뿐 아니라 정책 설계, 사용자 권리, 금융시장 균형, 사회적 수용성이라는 4대 관점에서 어떤 방향으로 설계되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분석한다.

한국형 CBDC 추진 현황 정리

기술 실험

한국은행은 2021년부터 두 차례의 기술적 CBDC 실험을 완료했다.
1단계는 기본 발행·송금·환수 기능, 2단계는 스마트 계약, 오프라인 결제, 이자 적용, 조건부 지급 등을 포함했다.

시범사업에는 국민은행, 신한은행, 카카오, LG CNS, 카카오페이, 한화시스템 등 다양한 민간 파트너가 참여했다.

2024년부터는 ‘도매형 CBDC 시범 적용 사업’을 통해 실제 금융기관 간 CBDC 기반 토큰화 증권 결제 인프라 테스트를 진행 중이다.

 

한국형 CBDC에 요구되는 기술적 방향

CBDC의 기술적 구조는 국가 정책 방향과 직결된다.
한국은 다음 3가지 핵심 기술 기준을 중심으로 설계할 필요가 있다.

(1) 하이브리드 구조

완전 중앙 집중형이 아닌,
부분 분산형 구조(Distributed Ledger + 중앙 통제)를 적용해야 한다.

이는 거래 속도와 효율성은 유지하면서도 민간 파트너의 참여 유연성을 확보할 수 있다.

(2) 프라이버시 보호 기술의 내장

한국은 개인정보 보호에 대한 시민의 요구가 높은 나라다.
따라서 디지털 원화에는 익명성 보장 수준을 조절할 수 있는 기술(예: 조건부 익명성이 내장돼야 한다.

즉, 소액 거래는 비식별성 유지, 고액 거래는 규제 대응 가능하도록 설계되어야 한다.

(3) 오프라인 결제 기능 필수화

한국은 재난 대비, 네트워크 불안 지역, 고령층 대응 등을 위해 인터넷 없이도 작동하는 지갑 구조를 반드시 확보해야 한다.
NFC 기반 또는 보안 칩 기반 오프라인 결제 기능이 기술적으로 가능해야 한다.

 

정책 설계 방향 – 신중하면서도 분명해야 한다

기술보다 더 중요한 것은 CBDC의 정책적 운용 프레임이다.
한국의 통화 구조와 금융시장 특성을 고려할 때, 다음과 같은 정책 방향이 요구된다.

(1) 소매형 전면 도입은 신중하게

CBDC의 소매형 전면 도입(국민이 직접 사용하는 디지털 화폐)은 금융시장의 예금 기반을 위협할 수 있다.

은행은 예금을 바탕으로 대출을 공급하는데, CBDC가 예금을 대체하면 신용 창출 구조가 위축될 수 있다.

따라서 초기에는
– 정부 지급금(재난지원금, 복지금 등)에 한정
– 소액 사용 중심
– 자발적 선택 기반
으로 단계적 확대가 바람직하다.

(2) 도매형 기반의 ‘토큰화 결제 시스템’ 강화

금융기관 간 증권, 채권, 외환 등의 결제를 CBDC로 처리하는 도매형 구조는 금융시장 효율성과 안전성 향상에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 

한국은 이미 KRX(한국거래소), 금융결제원 등과 협력해 CBDC 기반 자산 토큰화 실험을 진행 중이며, 이는 중장기적으로 자본시장 디지털 전환의 핵심이 될 것이다.

(3) 재정정책과 연계된 조건부 지급 기능 활용

디지털 원화는 특정 목적의 지급에 대해 기간, 업종, 지역 제한 조건을 부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 청년 고용 촉진용 디지털 화폐 → 고용 연계 지역에서만 사용
  • 기후 대응용 지급 → 탄소 감축 관련 소비에만 사용

이러한 조건부 지급 구조는 정책 효과의 정밀도와 투명성을 모두 높일 수 있다.

 

사용자 관점: 디지털 화폐의 수용성과 신뢰성 확보

CBDC는 기술이나 정책만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사용자가 실제로 수용하고 신뢰할 수 있어야 제도화가 가능하다.

이를 위해 다음 요소가 중요하다:

(1) 프라이버시 보호의 명확한 기준 제시

CBDC 도입 초기 단계에서 사용자는 "정부가 모든 소비를 감시할 수 있다"는 우려를 가질 수 있다.

따라서 한국은행은 반드시 익명성과 투명성의 경계를 제도적으로 명시하고, 사용자에게 거래 내역 제어 권한을 부여해야 한다. 

(2) 선택권 보장과 계층별 지원 강화

CBDC 사용은 ‘의무’가 아니라 자발적 선택이어야 한다.

고령층, 장애인, 저소득층이 기술적으로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대체 수단(종이 바우처, 음성 안내, 보조 단말기 등)
교육 프로그램이 병행되어야 한다.

(3) 편리한 사용자 경험과 민간 연계 강화

CBDC가 별도 앱으로만 작동하면 보급 속도가 늦어질 수 있다.

따라서 기존 금융앱, 간편결제 앱, 공공 플랫폼과 지갑 연동이 가능해야 하며, UI/UX는 민간 주도의 설계에 유연하게 열려 있어야 한다.

 

사회적 논의와 법적 기반의 필요성

CBDC는 단순한 디지털 결제가 아니라 화폐의 성격과 사회 시스템의 구조를 재설계하는 일이다.

따라서 제도적 정당성과 사회적 합의를 확보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준비가 필요하다.

(1) CBDC 기본법 또는 특별법 제정

현행 한국의 법률은 디지털 화폐 발행, 유통, 회수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없다.

한국은행법, 전자금융거래법, 개인정보보호법 등 복수의 법령을 개정하거나 CBDC 전용 법률을 제정해 법적 근거와 책임 구조를 명확히 해야 한다.

(2) 공개된 시뮬레이션과 시민 의견 수렴

CBDC 도입이 미칠 영향은 국민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문제다.

따라서 정부는 단계별 시나리오를 공개하고, 시민단체, 학계, 산업계, 일반 사용자의 의견을 수렴하는 사회적 공론장을 운영해야 한다.

 

 

 

한국형 CBDC는 단순한 기술 프로젝트가 아니다.
그것은 대한민국이 디지털 사회에서 어떤 방식으로 화폐를 재정의하고, 국민과 소통하며, 금융시장과 정책을 연결할 것인가에 대한 복합적 선택이다.

CBDC는 기술적으로는 가능하지만, 정치적으로는 신중해야 하고, 사회적으로는 포용적이어야 하며, 경제적으로는 균형 있어야 한다.

앞으로 디지털 원화가 실생활에 적용되기 위해서는 기술·정책·사용자·사회 모두의 준비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것은 정부와 중앙은행만의 몫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함께 설계하고 논의해야 할 미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