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을 초월한 송금은 오늘날 글로벌 경제의 핵심 인프라다.
수출입 대금, 해외 투자 자금, 외국인 근로자의 송금 등 세계는 하루에도 수조 달러가 넘는 자금이 오가는 구조 속에서 움직이고 있다.
이러한 국제 송금 시스템의 중추는 SWIFT(국제은행간통신협회)가 담당해왔으며, 수십 년간 사실상 독점적인 글로벌 금융 네트워크로 기능해왔다.
그러나 디지털 화폐, 특히 중앙은행 디지털 화폐(CBDC)의 확산은 이 구도를 뒤흔들기 시작했다.
각국 중앙은행은 디지털 화폐를 통해 보다 빠르고 저렴하며 안전한 국제 결제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다는 기대를 갖고 있으며,
일부 국가는 이미 SWIFT를 우회하는 다자간 CBDC 송금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이 글에서는 SWIFT 시스템의 구조와 한계를 짚고, CBDC가 실제로 글로벌 송금의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는지, 그리고 어떤 국가들이 이미 그 전환을 시작했는지를 심층적으로 분석한다.
SWIFT 시스템은 무엇이며, 어떤 구조로 작동하는가?
SWIFT는 1973년 설립된 국제은행간통신협회로, 현재 200여 개국, 11,000개 이상의 금융기관이 가입해 있다.
이 시스템은 송금 그 자체를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각 은행 간 메시지를 암호화하여 안전하게 전달하는 ‘금융 메시지 인프라’에 가깝다.
예를 들어 A국 은행이 B국 은행에 1만 달러를 송금하고자 할 때, SWIFT는 그 메시지를 국제표준 형식으로 포장하여
중계 은행들을 통해 전달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이 구조는 안정성과 보안성 측면에서 뛰어나지만, 여러 가지 한계를 동시에 갖고 있다.
SWIFT 시스템의 구조적 한계
첫째, 비용이 비싸다.
각 중계 은행은 수수료를 부과하고, 이 과정에서 송금 수수료는 사용자 입장에서 부담이 크다.
둘째, 속도가 느리다.
여러 중개 기관을 거치며 업무 시간이 다를 경우 최대 2~5일까지 결제가 지연될 수 있다.
셋째, 투명성이 낮다.
중간에 어떤 기관이 개입했는지, 어디서 수수료가 빠졌는지 파악하기 어려워 사용자 불만과 오류 대응이 어렵다.
넷째, 지정학적 리스크에 취약하다.
미국·EU가 주도하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정치적 제재 수단으로 활용되는 경우가 많다.
(예: 러시아의 SWIFT 퇴출)
이러한 문제로 인해, 새로운 국제 결제 시스템의 필요성이 대두되기 시작했고,CBDC는 그 대안으로 본격 주목받게 되었다.
CBDC가 국제 송금 구조를 바꿀 수 있는 이유
CBDC는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디지털 화폐다.
이 디지털 화폐가 국제적으로 통용될 수 있다면, 국가 간 실시간 결제와 송금이 가능해질 수 있다. 왜 가능한가?
첫째, 중앙은행 간 직접 연결이 가능하다.
중개 은행 없이 각국 중앙은행이 디지털 화폐로 직접 정산할 수 있다.
둘째, 거래 속도가 즉시 처리된다.
블록체인 기반이나 API 기반 CBDC는 실시간 송금을 기술적으로 구현할 수 있다.
셋째, 수수료가 거의 없다.
중계 비용과 환전 수수료를 줄이면서 소액 송금에서도 수수료 부담을 줄일 수 있다.
넷째, 거래가 투명하게 기록된다.
스마트 계약 기반 CBDC는 누가 누구에게 얼마를 어떤 조건으로 송금했는지를 자동 기록할 수 있어 금융 규제 대응력도 강화된다.
즉, CBDC는 기술적으로 SWIFT의 단점을 대체할 수 있는 구조를 갖추고 있다.
실제 진행 중인 다자간 CBDC 송금 프로젝트
현재 전 세계적으로 CBDC 기반 국제 송금 실험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대표적인 프로젝트는 다음과 같다.
(1) mBridge 프로젝트 (중국, 홍콩, 태국, UAE)
- BIS(국제결제은행) 주도
- 4개국 중앙은행이 각국 디지털 화폐를 사용하여
실시간 송금 및 외환 결제 실험 진행 - 중개은행 없이 국가 간 CBDC 직접 송금
- 실험 결과: 거래 시간 수 초, 수수료 50% 이상 감소
(2) Project Dunbar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남아공, 호주)
- 다자간 공동 결제 플랫폼 구축 실험
- CBDC 기반 국제결제 정산 시스템 개발
- 다양한 법적 기준을 통합하는 구조 시도
(3) 일본 – 필리핀 간 해외 노동자 송금 실험
- 일본 은행과 필리핀 중앙은행이 협력하여
해외 송금 수수료를 90% 줄이는 파일럿 테스트 진행 - 필리핀 노동자들이 일본에서 보낸 돈을
가족들이 즉시 필리핀 지갑 앱에서 수령
이처럼 다수의 실증 프로젝트에서 CBDC가 국제 송금의 시간, 비용, 투명성 측면에서 우수한 성과를 보이고 있다.
CBDC 송금 시스템이 해결해야 할 과제
기술적 가능성과 실험 결과는 긍정적이지만, CBDC 국제 송금이 대중화되기 위해선 다음과 같은 과제를 극복해야 한다.
(1) 법적·제도적 통합 부족
각국의 금융 규제, 외환법, KYC/AML 기준이 달라
CBDC를 교환하거나 정산하는 방식에 혼선이 발생할 수 있다.
(2) 통화 주권과 정치적 이해관계 충돌
어떤 CBDC를 기준으로 삼을 것인가,
환율은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
지정학적 긴장 속에서 어떤 국가와 연결할 것인가 등의 문제 발생
(3) 기술 표준의 상이성
CBDC 설계 방식이 중앙 집중형, 분산형, 하이브리드형 등으로 다르며, 국가 간 호환성이 떨어질 수 있음
(4) 보안과 사이버 공격 대응
실시간 고속 거래가 이루어지는 만큼 사이버 보안과 개인정보 보호 체계 강화가 필수
향후 전망 – SWIFT의 시대는 끝나고 있는가?
현 시점에서 CBDC가 SWIFT를 완전히 대체하기는 어렵다.
SWIFT는 글로벌 금융 시스템에서 깊이 뿌리내려 있고, 국제 표준, 안정성, 제재 체계 등에서 막강한 장점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변화는 불가피하다.
- SWIFT가 자체적으로 디지털 화폐 통합 시스템을 개발할 수밖에 없다.
- 지역 블록 기반의 CBDC 송금 네트워크가 등장하면서,
지역 간 SWIFT 의존도는 점차 낮아질 것이다. - 기술 표준이 정립되면, 글로벌 결제는 SWIFT를 거치지 않아도 가능한 구조로 전환될 수 있다.
결국 SWIFT는 점진적으로 디지털화될 것이며, CBDC와 경쟁보다는 통합 혹은 공존의 방향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크다.
CBDC는 단지 국내 송금의 수단이 아니라, 글로벌 금융의 인프라를 재설계할 수 있는 도구다.
SWIFT는 오랫동안 안정적인 국제 결제의 중추 역할을 해왔지만, 높은 비용과 느린 속도, 지정학적 취약성 등으로 인해
CBDC 기반의 새로운 시스템이 대체 혹은 보완을 요구받고 있다.
CBDC가 국제 송금 시스템으로 정착하기 위해서는 기술을 넘어서 국제 협력과 규제 조화, 법제도 정비, 신뢰 기반의 표준화가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
지금까지의 흐름은 SWIFT의 시대가 서서히 저물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자리를 디지털 화폐가 얼마나 빠르게, 효율적으로, 책임 있게 메꿀 수 있을지에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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