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적으로 중앙은행 디지털 화폐(CBDC)의 도입이 본격화되고 있는 가운데, 유독 빠르게 움직이는 지역이 있다. 바로 중남미(Latin America)다.
브라질, 멕시코,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자메이카, 에콰도르 등 여러 중남미 국가들은 2024년부터 본격적으로 디지털 화폐 실험 및 도입을 추진 중이다.
이들은 왜 G7 국가들보다 빠르게 CBDC 도입에 나서는 걸까?
이는 단순한 기술 도입 경쟁이 아니다.
중남미는 역사적으로 고질적인 인플레이션, 금융 인프라 미비, 현금 의존 경제 등의 문제를 안고 있으며, CBDC를 통해 이를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고 있다.
이 글에서는 중남미 국가들이 CBDC를 도입하려는 핵심 배경과 전략, 실제 진행 중인 국가별 정책, 그리고 그들이 겪는 도전과 기회에 대해 경제적·사회적·기술적 관점에서 심층 분석한다.
중남미 국가들이 처한 공통적 경제 구조 문제
🔸 인플레이션과 통화 불안
중남미 대부분 국가들은 극심한 물가 상승과 통화 가치 불안정을 경험해왔다.
예를 들어:
- 아르헨티나: 2023년 기준 연간 인플레이션 140% 돌파
- 베네수엘라: 수년째 하이퍼인플레이션 국가로 분류
- 브라질: 헤알화의 환율 변동성이 극심한 수준
이런 환경에서는 국민이 자국 통화를 믿지 않고, 달러화, 암호화폐 등 비공식 수단에 의존하는 비율이 매우 높다.
🔸 현금 중심의 경제 구조
은행 계좌가 없는 인구가 중남미에서는 평균 40% 이상이며,
특히 농촌 지역과 빈민층은 현금 의존도가 극단적으로 높다.
이로 인해 세금 기반이 약해지고 복지금 전달이 지연되며 금융 사기의 온상이 되기도 한다
CBDC는 이러한 구조적 문제에 대한 디지털 해결책으로 주목받고 있다.
중남미 국가들이 CBDC에 주목하는 핵심 이유 5가지
1) 금융 포용 확대
디지털 화폐는 스마트폰만 있으면 은행 계좌 없이도 사용 가능하다.
정부는 이를 통해 저소득층·비공식 노동자 계층까지 금융 시스템에 편입시키려 한다.
예: 브라질은 Pix(국가 결제 시스템)와 디지털 헤알화를 연동해 모바일 기반 결제 인프라를 농촌까지 확산 중이다.
2) 통화 정책 강화
CBDC는 중앙은행이 직접 발행하고 추적할 수 있기 때문에, 현금보다 훨씬 정밀한 통화 정책 조정 수단이 된다.
특히 디지털 화폐에 ‘소멸 조건’이나 ‘지정 사용처’를 붙이면, 정부의 재정 집행도 훨씬 효율적이고 목적 지향적이 될 수 있다.
3) 비공식 경제와 탈세 억제
중남미 GDP의 30~50%는 비공식 경제(underground economy)로 추정된다.
이 구조는 세금 회피, 마약 자금 세탁, 불법 거래의 온상이기도 하다.
CBDC를 통해 모든 거래 흐름을 추적 가능하게 만들면 정부 입장에서는 세수를 확보하고, 재정 투명성도 확보할 수 있다.
4) 암호화폐 의존 억제
중남미 일부 국가는 비트코인을 일상 결제 수단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예: 엘살바도르, 멕시코 일부 지역)
그러나 정부 입장에서는 비트코인·스테이블코인 등이 자국 통화 주권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위협을 인식하고 있다.
CBDC는 이에 대한 공공 대체 수단이자 국가 통화 주권을 지키기 위한 방어막이 될 수 있다.
5) 국제 무역의 디지털화 대응
브릭스, 중국, 러시아 등 일부 블록에서는 기존 SWIFT 시스템을 대체하기 위한 디지털 통화 기반 무역 결제 시스템을 실험 중이다.
중남미 국가들은 이 흐름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 CBDC 기술을 선제적으로 확보하려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주요 국가별 CBDC 추진 현황
🇧🇷 브라질 – 디지털 헤알화 (DREX)
- 2024년 시범 테스트 진행 완료
- ‘DREX’라는 이름의 디지털 통화 개발 중
- 정부, 민간 은행, 핀테크와 협업해 토큰 기반 결제 시스템 구축
- 목표: Pix 시스템과 통합된 범국가적 디지털 인프라 완성
🇲🇽 멕시코 – 디지털 페소 개발 초기 단계
- 중앙은행(Banxico)이 2025년 내 시범 발행 목표
- 중소도시·저소득층 중심의 금융 포용성 확대 전략
- UPI 기반 구조로 송금 수수료 절감 목표
🇯🇲 자메이카 – JAM-DEX
- 2022년 세계 최초로 공식 출시된 소규모 CBDC
- 기존 금융 접근성 낮은 계층에 집중
- 신분증 없이도 간편 인증으로 접근 가능한 구조 실험
🇺🇾 우루과이 – 중앙은행 디지털 화폐 실험 완료
- 2017~2019년까지 시범 운영
- 현재는 도입 일시 중단 상태지만, 기술력 확보 목적의 시범은 완료됨
중남미의 CBDC, 기술적 한계와 도전 과제
기술 인프라 부족
- 인터넷 인프라 미비 지역 다수 존재
- 스마트폰 보급률이 낮은 계층도 여전히 많음
신뢰 문제
- 과거 통화개혁 실패, 인플레이션 경험으로 인해 정부 통화 시스템 자체에 대한 불신이 강함
개인정보 보호 체계 미흡
- 프라이버시 보호 법제화 수준이 낮아 CBDC를 통한 감시 우려가 현실적 문제로 대두
사이버 보안 역량 부족
- 해킹, 피싱 등 공격에 대한 공공 인프라의 보안 대응력이 낮음
향후 전망 – 중남미에서 ‘모범 사례’가 탄생할 수 있을까?
중남미는 경제적 취약성, 디지털 불균형, 사회적 신뢰 부족이라는 세 가지 약점을 안고 있지만, 동시에 CBDC가 가장 강력한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조건도 갖춘 지역이다.
- 현금 경제 → 디지털 전환
- 통화 불신 → 정부 보장 디지털 화폐
- 미진한 세원 → 투명한 거래 추적 시스템
브라질과 멕시코는 이미 이 과정을 국가 디지털화 전략 전체와 연결하고 있으며, 이는 단순한 실험이 아닌 지속 가능한 정책 전환의 시작점으로 평가된다.
중남미는 디지털 화폐의 실패를 겪은 암호화폐 실험국들과는 달리, 정부 주도 + 공공 금융 시스템 강화 모델로 평가받을 가능성이 높다.
CBDC는 선진국의 ‘편리함’이 아니라, 중남미 국가들에겐 통화 안정성과 금융 생존 전략이다.
이 지역은 지금까지 수많은 화폐 위기와 금융 불신을 겪어왔지만, 그만큼 빠르게, 그리고 과감하게 새로운 시스템을 수용하고 있다.
만약 브라질·멕시코·자메이카 등의 CBDC 모델이 성공적으로 정착된다면, CBDC의 진정한 가능성은 G7이 아니라 중남미에서 먼저 입증될지도 모른다.
앞으로 디지털 화폐가 빈곤·불평등·금융 소외 해결의 도구로 기능할 수 있을지, 중남미는 전 세계가 주목해야 할 실험실이 될 것이다.
'디지털화폐(CBDC)' 카테고리의 다른 글
빅테크와 중앙은행, 플랫폼 전쟁은 시작됐는가? (0) | 2025.06.29 |
---|---|
디지털 화폐와 디지털 ID – 정부 통합 시나리오 분석 (0) | 2025.06.28 |
무이자 사회가 현실로? 디지털 화폐와 금리 정책의 미래 (0) | 2025.06.28 |
일반인이 알아야 할 디지털 화폐 시대의 리스크 5가지 (0) | 2025.06.28 |
나라마다 다른 CBDC 발행 구조, 무엇이 더 현실적인가? (1) | 2025.06.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