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곳곳의 지자체들은 지역 내 소비 진작과 소상공인 지원, 지역경제 순환 활성화를 위해 다양한 형태의 지역화폐(로컬커런시)를 운영하고 있다.
한국의 경우에도 경기지역화폐, 전북지역상품권, 강원페이 등 다양한 지역화폐가 전자카드, 모바일 앱, 지류 상품권 등 여러 방식으로 발행되고 있다.
그러나 중앙은행 디지털 화폐(CBDC)의 도입 논의가 본격화되면서 이러한 지역화폐가 향후 어떤 형태로 변화하거나 대체될 수 있을지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점차 커지고 있다.
CBDC는 프로그래머블한 구조를 기반으로 특정 지역·업종·기간에 사용 제한이 가능하기 때문에, 지역화폐와 유사한 기능을 보다 정교하게 구현할 수 있는 기술적 기반을 제공한다.
이 글에서는 지역화폐의 역할과 한계를 짚어보고, CBDC가 지역화폐를 어떻게 진화시킬 수 있을지, 혹은 완전히 대체할 수 있는지를
정책적, 기술적, 사회적 관점에서 분석한다.
지역화폐의 존재 이유와 작동 방식
지역화폐는 지역 내 경제 순환을 촉진하고, 대기업보다 지역 상권 중심의 소비를 장려하기 위해 도입된 정책 화폐다.
지자체가 자체 예산으로 발행하거나, 정부 보조금과 함께 일정 금액의 인센티브(예: 10% 추가 지급)를 통해 사용을 유도한다.
주요 기능
- 지역 소상공인 매출 증가
- 지역 내 소비유출 방지
- 재난지원금 등 정책금 집행의 지역 분산
- 지방자치단체의 경제 주권 강화
유통 방식
- 지류(종이형) 상품권
- 선불카드형 지역화폐
- 모바일앱 기반 QR 결제형
현재까지 한국에는 약 200여 종의 지역화폐가 존재하며, 2023년 한 해 기준 발행액은 약 11조 원에 달한다.
지역화폐가 가진 구조적 한계
지역화폐는 긍정적인 목적에도 불구하고,
다음과 같은 지속가능성 문제와 운영 비효율성이 반복적으로 제기돼 왔다.
(1) 예산 의존형 인센티브 구조
- 사용자는 대부분 10% 캐시백 또는 할인 혜택 때문에 지역화폐를 사용한다.
- 이는 매년 막대한 보조금과 예산 투입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 예산 삭감 시 사용률 급감
(2) 사용처 제한과 불편함
- 특정 가맹점에서만 사용 가능
- 앱 설치, 잔액 확인 등 디지털 격차 발생
- 일부 가맹점은 탈세 목적의 현금화 시도도 존재
(3) 통합성 부족
- 각 지자체별로 운영 방식이 달라 전국적인 확장성 부족
- 타 지역에서 사용 불가 → 소비자의 이동성 제약
이러한 한계로 인해 “지역화폐가 단기 정치적 이벤트에 불과하다”는 비판도 일정 부분 설득력을 갖는다.
CBDC가 제공할 수 있는 ‘지역화폐 기능의 고도화’
CBDC는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디지털 통화로, 프로그래머블한 특성을 통해 기존 지역화폐가 구현하지 못한 기능을
더 정교하고 효율적으로 설계할 수 있다.
(1) 사용처·지역·업종 제한 기능
CBDC는 특정 금액에 대해
– 사용 가능 업종
– 사용 지역 (GPS 기반 또는 사업자 주소 기반)
– 사용 기간 (소멸성 또는 정해진 유효기간)
등을 자동 설정할 수 있다.
예:
서울특별시 주민에게 지급된 재난지원금 30만 원은
– 서울 소재 중소상인 가맹점에서
– 한 달 내
– 식품 및 생필품 업종에서만 사용 가능
→ 기존 지역화폐보다 훨씬 정밀하고 투명한 정책 설계가 가능해짐
(2) 부정 수급 방지 및 모니터링 자동화
CBDC는 모든 거래가 디지털로 기록되기 때문에
– 중복 수급
– 허위 가맹점 등록
– 현금화 시도
등을 AI 기반 탐지 시스템으로 실시간 파악 가능
→ 운영비용 및 감사비용 절감
(3) 국가와 지자체 협력 기반 통합 인프라 구축
CBDC 기반의 ‘지역화폐 기능’은 각 지자체가 자체 화폐를 운영하지 않아도 국가 단위 인프라 안에서
지역 단위 정책 설정만으로 동일한 효과를 제공할 수 있다.
→ 중복 인프라 유지 비용 절감, 사용자 불편 감소
4. CBDC 기반 ‘지역 디지털 지갑’ 모델
CBDC를 기반으로 지역화폐의 목적을 계승할 수 있는 새로운 모델이 있다.
바로 ‘지역 디지털 지갑(Local Digital Wallet)’이다.
구조
- 기본 디지털 화폐와 별도로
- 지자체별로 정책 지급금이 들어오는 지역 전용 지갑 생성
- 이 지갑은 자동으로 지역 제한, 업종 조건, 기간 설정이 적용됨
예:
강릉시가 관광진흥을 위해 지역 지갑에 10만 원 지급
→ 강릉 지역 내 숙박, 식당, 문화시설에서만 사용 가능
→ 미사용 금액은 30일 후 자동 소멸
이 구조는 기존 지역화폐보다
– 더 높은 정책 정밀성
– 낮은 부정 수급 가능성
– 전국 어디서나 하나의 지갑으로 사용 가능
이라는 장점을 제공한다.
정책적 쟁점과 제도 설계의 고려사항
CBDC가 지역화폐를 대체 또는 흡수하는 과정에서 다음과 같은 정책적 고려가 필요하다.
(1) 지자체의 자율성 확보
CBDC는 중앙은행 발행 통화이기 때문에 모든 기능이 국가 단위에서 통제될 수 있다.
하지만 지역화폐는 지방자치의 상징적 정책 수단이기도 하므로, CBDC 기반 지역 기능 설계에서도 지자체가 정책 목적, 지급 대상, 업종 조건 등을 자율적으로 설정할 수 있는 권한이 보장돼야 한다.
(2) 기존 지역화폐와의 과도기 병행 운영
CBDC가 본격화되기 전까지는 기존 지역화폐와 병행 운영이 필요하다.
따라서 지류형, 카드형, 앱 기반 지역화폐와 CBDC 기반 시스템 간 호환성 확보와 점진적 통합 전략이 중요하다.
(3) 지속가능한 인센티브 구조 설계
CBDC 기반 지역지갑도 일정 수준의 인센티브가 없다면 사용률이 낮아질 수 있다.
정부와 지자체는
– 탄소중립 소비
– 재난 대응
– 지역 축제, 전통시장 등
정책 목적에 따라 다양한 시기별·이벤트 기반 인센티브 설계가 필요하다.
CBDC는 지역화폐의 기능을 흡수하거나 대체할 수 있는 기술적·정책적 준비가 충분하다.
그러나 그것이 단순한 ‘폐지-대체’가 되어서는 안 된다.
중앙은행 디지털 화폐와 지역화폐의 만남은 지방의 경제 자율성과 국가의 기술 인프라를 연결하는 접점이 되어야 하며,
기존 지역화폐가 실현하지 못했던 문제를 CBDC가 보완하면서도 그 철학은 계승해야 한다.
한국형 CBDC가 지역 중심의 분산경제 모델을 지향한다면, 디지털 지역화폐는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진화하는 형태로 국민의 생활 안에 자연스럽게 녹아들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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